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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의 어원

우리나라 가구의 시원적 형태는 광주리일 것이다. ≪고려도경≫의 등비(??)에 관한 기록을 보면 “옛날 폐백에는 상(箱)·비(?)를 썼는데 지금 고려의 풍속에서 없어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상이나 비는 모두 광주리를 의미하는데 여기에 예물을 담았다는 것으로, 고려시대까지도 예(禮)에서만은 상·비를 그대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기록으로 고려시대 이전에도 광주리를 사용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광주리의 재료는 대개 대나무·버드나무·등나무와 같은 연질로서, 고대 유목민들이 석기(石器)로도 쉽게 다듬을 수 있고 몸에 지니고 다니기에 간편하고 가벼운 것이었다. 그들은 여기에 옷과 식품을 넣었으므로 광주리의 필요성은 저장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생활자료의 보관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절실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빗살무늬토기시대 유적지에서는 당시 수혈식 주거였기 때문에 바닥에서 저장공(貯藏孔)이 발견되고, 농경이 주된 생활로 바뀐 민무늬토기시기에는 철부도끼의 유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벌목뿐만 아니라 저장을 위한 목공기술이 발전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예로 낙랑고분에서 발견된 인물화상칠채비(人物畵像漆彩?)와 철기시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 중 목제 관곽(棺槨)의 출토를 들 수 있다.

관곽 유물에는 ㄷ자형 꺾쇠도 있어 이런 대형 목판의 제작이 가능한 도구라면 의궤(衣櫃)나 상자형 농(籠) 등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궤(櫃)에 뚜껑만 씌웠다가 앞면에 문을 달아 농으로 그 형태를 바꾸었고, 다시 농의 윗부분에 개판(蓋板), 아랫부분에 다리가 붙어 현재의 장(欌)과 같은 형태로 진전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목적 가구